여름 밤, 화성

여름 밤은 식은 공기 속에도 습하기만 하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매미 우는 소리 속, 퇴근 길은 그저 덥고 짜증이 날 만하다.

특히 수원-서울을 오가며 출퇴근을 하는 내게 싱그러운 여름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름의 그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여름 만의 설렘을 느끼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젠 그렇지 않다라고 느꼈을 때는 조금 슬펐던 것 같다.

 

그래서 퇴근 길에 집에 가던 경로를 조금 이탈해봤다.

이 넓은 지도 상에서 아주 약간이지만, 꽤 즐거움이었다.

 

 

모든 것은 내게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이르러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원 화성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냥 동네 산성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사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어마무시한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수원 화성의 정문은 '장안문'인데, 위치한 곳은 흔히 '북문'이라고 부르는 영화동과 연무동 사이 그 어디쯤이다.

물론, 좀 더 넓은 분포도를 보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 지역을 돌아다니면 성곽의 모습과 장안문, 방화수류정을 구경할 수 있다.

 

이 곳에 가면 정말 오래된 골목들과 지금까지 보기 힘든 풍경들이 즐비하다.

마치,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를 '하드'로 표현해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모습들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저녁 시간이 되어 차분해진 공기 아래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노인들.

그리고 화성의 야경을 보러 나온 어린 학생들.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모습까지.

다채로움이 섞여 화성의 모습보다 그걸 보고 있는 게 즐거웠다.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고양이들.

자유로운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고선 더 이상 다가가지 말아야 겠다라고 생각했다.

 

 

많은 고양이들이 자기의 자리를 잡고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더라.

내가 그 고양이들이 귀엽다라는 이유로 그 바라보는 모습의 자유를 뺏을 수는 없었다.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나는 그저 나대로.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바라볼 뿐.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서도 귀여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발을 모으고 꼬리를 돌려서 여기저기 쳐다보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너무 쳐다보고 있었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를 떴다.

 

 

고양이를 보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일어서서 주변을 걸어다녔다.

수많은 골목들 사이로 혹시나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을까하고 둘러봤지만 없다.

 

하지만, 고양이만 찾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골목 풍경.

모든 것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여름 밤만의 특권이다.

 

닫힌 셔터를 보며 도대체 여긴 무슨 가게일까. 무슨 일을 하는 곳일까.

그런 인생에 하나 도움 안되는 생각들이 자라 꽃피는 곳.

 

 

이런 모습. 저런 모습.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 대해 관심을 쏟다보니 시간이 빨리 흘러 간다.

 

 

사실 화성으로 출발하면서 이런 거, 저런 거 찍어봐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계획의 30%도 채 찍지 못하고, 방화수류정을 찾았다.

 

이런 저런 야경을 담으면서 무척이나 화성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많은 조명을 사용하지 않아서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주민들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곽을 따라 푸른 잔디와 소나무들은 적당한 높이를 유지했고, 온전히 성곽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이 주변에서 이 모습을 즐기는 사람들의 적당한 소음까지.

완벽했다.

 

 

짧은 이탈을 끝내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할 줄 알았던 나는 별 생각이 없어졌다.

끝내 여름밤의 설렘 같은 건 느끼지 못했지만, 그저 편안하게 이 시간 속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저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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